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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수련 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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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수기 올려봅니다!!-오주환(200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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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 수기 함 올려보네요 ..
1,2부공 수업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하니.. 아마 3부공을 올려야겠지요??
음... 1,2,3부공 중 가장 즐거웠던 3부공 수업, 사람들도 많았고 꽤나 재미났던 것 같아요..
자발공 하면서 척추도 많이 교정되고 지금 생각해보니
내 딴에야 기분 좋아서 막 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문어 같았을
것 같습니다 ㅋㅋ..
기채집과도 또다른 느낌으로 빛을 수련하는 것도 꽤나 재밌더군요..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열이 나면서 빛이 나를 비추는 것 같더군요
어쨋든 저는 수련을 하는게 재미나니까 다행이지요 ㅋㅋㅋ..
수업을 마치고 좀 더 있다가 내려왔으면 여러가지 많이 먹고 내려왔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쩝쩝... 수정과 꼭 먹고 싶었는데...
어쨋든 원장님 예감이 맞아서 길은 뻥 뚫려 있더군요 서울까지 약 3시간
반만에 신나게 달려왔지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래서 서둘러 보내셨나
생각되기도 하공..
음... 집에 오니까 기분도 좋고 신나긴 하더군요... 약간 흥분도 했어요....
ㅎㅎ.. . 기분좋게 잠을 자고... 방금 체조를 했는데요. 집에 가면 수련 안하면 어쩌지.. 하고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힘도 하나도 안들고 너무도
잘 되더군요..... 파장도 또 바뀌었고... 음...
이만 줄이고... 2월 11일 다시 뵈요 !!! 사랑하는 중화양생익지공
하루도 안 됐는데 벌써 그립네요 ㅠㅠ....
안녕히 계십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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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장공을 마치고....-이진(200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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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공반을 맞이하느라 준비하신 원장님 이하 사무국의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수련조건을 위해 많은 노력의 흔적에 비해 보답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
개인적인 보람과 모두 다 새로움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유홍준님의글가운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전과 다르리라"
라는 말이 새삼 깊게 이해 된 장공이었습니다
익지공을 사랑하면 기를 알게 되고 기를 알게되면 익지공의 느낌이 그전과 다르다는 것을 ....
익지공을 안게 아니라 이제 익지공에 입문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며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보람에 앞으로의 수련에 나 자신이 기대합니다.
평소 선배들이 앉아 있기에 나름 기를 모우고 앉아 있었지만 왜 앉아있는지를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피곡을 통해 고통 속에서 내몸의 변화를 느끼며 마음 을 씻는 마음으로 피곡을 통해 잔병의 고통이 사라지고 내가 피곡을 견디고 해내었다는 성취감 또한 내 생에 큰 자극이며 새로운 의욕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얻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무엇을 느꼈는냐도 소중하다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소중한 장공이었기에 앞으로 더욱 익지공을 사랑하여
그 전과 다른 또다른 느낌을 느끼고 싶습니다
3기를 위해 함께해주신 1.2기 선배님들의 모범적인 수련에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가 함께 익지공 발전과 보급에 동참하여 더욱 발전하는 중화양생익지공의 그날까지 함께 합시다
사랑합니다 익지공 ! 사랑합니다 원장 님! 사랑합니다 모든 도반님들 ....
익지공 황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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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
눈(雪)내린 날.-박수완(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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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雪)내려 천지(天地)를 하얗게 물들인다.
길고 지루했으며
아름답고 달콤했든 어제는
스쳐 지나갔고,
희망과 좌절
기쁨과 두려움의 내일도
바삐 지나간다.
눈(雪)덮인 들판에서
나 무엇을 할까?
눈(雪) 녹이고 길(道) 만들어
거병건신(去病健身), 장공개혜(長功開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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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웃으며 하는 말(言)-박수완(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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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어도 멀어도 가까워
기쁨과 좌절 버립니다.
울다가 울다가 웃는 것은 왜 입니까?
상생극(相生克), 상극생(相克生)이기 때문입니다.
울다가 울다가 웃으며 하는 말(言)
장공개혜(長功開慧)
장공개혜(長功開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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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
4부공 소감문~♡-윤영(200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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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공 첫째날...지난밤 서울에서 놀러온 친구덕에 눈이 떠지지가 않는다. 그래두 경주는 가야겠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헉..대전엔 눈이 펑펑 내린다. 창밖으로 하얗게 퍼붓는 것은 눈이 아닌가...
심하게 난감하다. 친구는 나보겠다고 놀러와 있고, 밖엔 눈까지 펑펑 내리고..고민..고민..왜 그순간 사무장님 얼굴이 떠오르는건지..ㅎㅎ순간 정리가 다 되었다.
친구는 서울로, 나는 경주로 떠났다. 눈은 그쳤지만 그래두 걱정이 된다. 이러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빙판길과 싸워야하는건 아닌지...나의 걱정은 곧 해결되었다. 구미를 지나니 눈은 언제 왔냐는 듯 흔적도 없고...그래두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2주전과는 사뭇 다른 경주 날씨..^^
아무 생각도 없고 수련장만 떠오른다. 곧장 수련장으로 향하였다.^^
이제는 익숙해질때도 됐건만...수련장 앞에 막상 도착하니 그넘에 쑥스럼은 왜 자꾸 걸려드는지..ㅎㅎ
어색으로 무장을 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걱정은 금물...역시나 너무 반가워들하신다. 이거 나를 넘 반가워들 하시는거 아닌가...(ㅋㅋ 이넘에 병 또 시작이다.)
역시 가장 먼저 하는건 기체조. 처음엔 무지 쑥스럽더만 이것두 자주하니 꽤나 재밌다. 글고..괜시리 하고 나면 심하게 건강해지는거 같아 기분도 좋구..ㅋ
설마 내가 이런 날이 올까 했더만...ㅎㅎ
기체조가 끝나고 수업은 5층 강의실에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바닥은 뜨끈뜨끈...좁은 장소지만 많은 수련생분들과 있으려니 꼭 대가족이 우글거리며 있는 듯한 이 기분...ㅎㅎ.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듯하다. 하긴 어떻게 공부하였더라도 좋았을듯 하지만..ㅋ
항상 극단적인 성격이기에 너무 좋으면 얼굴에 표현 한번씩 해주는 나...^^;
이곳에서의 공부가 너무 재밌어선지 책만 봐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옆에 계신 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않을셨을까...ㅋ
수업도 재밌고 그냥 수련장 안에 있으니 막연히 좋다.
늦은밤 1시가 되니 취침 시간이다. 조금 일찍 자는거 아닌가 생각하던중...
내 마음을 아셨던지 같이 한방을 쓰셨던 사무장님과 지휴스님...
밤새 풀코스로 나를 너무 재밌게 해주신다. 이거 첫날밤부터 너무 재밌는거 아닌가..ㅎㅎ
하두 웃어서 지금까지 배 한켠이 욱신거리긴 하지만..
역시 선배님은 선배님이신가 보다. 피곤하신 와중에도 어린 중생을 위해 어찌나 다양하고 재밌는 것들을 많이 보여주시던지...감사할 따름이다.
4부공 둘째날...3시간도 채 못자서 눈뜨기가 넘 힘들다. 그래두 또 즐건 하루를 생각하니 기쁜마음으로 눈이 떠진다.
간밤의 여파가 큰가보다. 또 웃음이 나오려한다. 이넘에 '오바쟁이병' 또 시작이다.
이상하리만큼 둘째날은 시간도 빨리 간다.
1부공땐 시계만 봤었는데...고개 돌리면 점심시간, 숨한번 쉬었더니 수업이 끝나버렸다.
경주를 떠날 시간이다. 흥분을 돌릴틈도 없었는데 벌써 떠날려니 아쉽다.
옆에 계신 지휴스님...하루 더 있자고 하신다.
심하게 동한다. 이럼 안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은 왜 변하는건지..
밤마다 확인 전화하시는 엄마 얼굴이 마구 떠오른다. 조금 걱정은 되면서도 이미 결정은 내버렸다.
지난날 예매해 두었던 표까지 환불하고 앉아버렸다.
다들 가시고 원장님과 사무장님, 미경선생님, 지휴스님, 성철 스님과 쩔쩔 끓는 방에서 파란색 담요를 덮고 있으려니 왜 그리도 그 순간이 너무 좋던지..ㅎㅎ
순간 춥디추운 대전에서 책과 씨름할 내 모습을 생각하니...다행이다.ㅋㅋ
역시나 둘째날도 선배님들은 날 실망 시키지 않은신다.
이번엔 원장님과 미경선생님, 그리고 성철스님까지 더불어서 날위해 어찌나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을 보여주시던지...
수업시간에 보았던 것도 있고, 처음 보는 것도 있지만...순간 '장공'에 대한 욕구가 마구 솟구친다. 10일...시간은 없고, 할일은 많고...할라치면 분명 길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3일째 되는날..월욜이다. 월욜아침을 경주에서 맞이할 줄이야...
오후의 바쁜 일정을 위해 아침에 부랴부랴 경주를 떠나왔다.
몸속, 맘속으로 뭐가 그리도 가득한지....아무래두 2박 3일간 수련장의 '氣'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보다. 물론 '피곡'에 들어가기 위해 단식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안먹어두 딱히 배고프지가 않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난 그말에 절대 비동감이다. 지금 나의 심정은 위에 견주어도 아래에 견주어도
남는 마음이다.
급하게 했긴 하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두 내년에 더 열심히 놀기 위해, 더 즐거이 놀기 위해 하늘이 주신 큰 선물인듯 하다.ㅎㅎ
에고 또 병 시작이다.경주가 그립다.또 가고싶다.가고싶다.가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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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
1부공을 다녀와서........김창원(200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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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제가 운이 무지 좋은가 봐여
오늘 3시에 제차가 써비스 센터에 예약이 되어있어서 가고 있었읍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던중에 540도 회전을 했읍니다
다행이 제가 마지막으로 신호를 받아서 가던중이라 아무런 사고도
없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으려니 무척 창피했읍니다
제차가 후륜이라서 눈과 얼음에는 무지 약해요....ㅜ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를 센터에 맡기고 지금 집에 들어와 글을 쓰네요..
어제 오후 서울로 올라오면서 차를 가지고 오지않은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올라가던중 눈이 많이와서 차들이 많이 밀렸지만
버스는 잘 가던군요.....
집에들어와서 기체조 한번 할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잘려고 누었는데
원장님과 사무장님 그리고 익지공에서 같이 계셨던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저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읍니다
1박2일 이라는 짧은 만남이 었지만 저에게는 정말 재밌는 시간 이었읍니다
익지공 식구들이 벌써 보고싶네요...ㅎㅎㅎ(한달만 참자....)
1부공에서 배운것을 열심히 수련해서 더 좋은 모습으로 1월달에
뵙겠읍니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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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
어디로 가는가?-박수완(20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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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디로 가는가?
오솔길에 누운 낙엽처럼
바람부는대로
가고 싶어요.
스쳐가는 바람이지만
달콤한 향기
남기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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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
꽃 한송이.-박수완(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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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몰아치는 바람타고
멀리서 맺은 인연 남산으로 이어졌다.
낙엽이 떨어질때 진리를 발견했고
꽃 한송이 다가 올때 미소가 피어 난다.
걷기공 시전할때
사~~르~~르 ~~~누운 남산
나를 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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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
26년간의 고질병에서 해방되다 !-장귀현(200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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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 금정구 부곡동에 사는 장 귀현입니다. 중화양생익지공 수련 소감을 쓰려고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남다른 감회가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공군에서 제대 후 새한자동차에 입사하여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77.9.1부터 주야간의 작업환경 속에서 79년에 첫 허리 부상을 당했으며 이때부터 고생이 시작됩니다.
79년 3월 초쯤에 퇴근 후 귀가해 머리를 감으려고 엎드리는 순간 머리가 그만 쏠려 땅으로 박히고 말았습니다. 이미 수차례 누적된 허리 부상이 원인이었습니다.
통증이 수백 개의 바늘이 허리와 다리를 찌르는 듯 했습니다. 하늘이 노란색으로 보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 이북에서 온 간첩출신 침술사가 있었습니다. 치료를 받아봤지만 효과는 없었으며 오히려 잘못된 시술로 고통은 날로 심해졌는데 통증이 올 때마다 그 고통은 말로 설명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서도 앉아도 누워도 뒹굴어도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럭저럭 지냈습니다만 일단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니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기공, 단전호흡, 체조, 뜸,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제일 괴로운 것은 머리 감을 때 엎드리지 못하니 계속 서서 샤워하면서 해야 하니 죽을 맛입니다. 낭비되는 물 값만 해도 엄청날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뜸, 체조가 조금은 도움이 되어 생활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쓰러졌을 때 바로 병원에 가서 X-ray 검사를 하고 바로 교정치료를 시작하기만 했어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고 빨리 완치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해결하지 못해 두 번째 직장, 세 번째 직장도 모두 그만두게 되었으며 몸이 이렇게 회복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나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제 주위에 저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살 길을 알려주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김 광원, 송 미향 부부의 도움으로 경주에 있는 열린 기사랑센터를 소개 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기공 쪽도 5~6군데를 다녔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드디어 2005년 6월, 1부공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수업 중에 점차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희망이 있구나’! 차츰 2부공, 3부공으로 공부가 깊어질수록 여느 기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부공을 마치고 3부공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이 때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공법을 누설할 수 없어 상세히 밝히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26년간의 허리 아픈 고생이 이제 다 끝이 난 것입니다.
수련이 끝나고 조금 숨을 고르고 멍하게 서 있으니. 몸이 예전과 다르고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허리가 가뿐한데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1979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26년째 지속된 고통이 끝난 것입니다. 하늘에 감사드렸습니다.
허리가 나은 것을 기념하고 자축하는 뜻으로 제가 처음 해본 일은 허리를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빨래를 한 것입니다.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전에는 결코 상상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지면을 빌려서나마 열린 기사랑센터의 윤 원장님 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김 사장 내외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도 권해드립니다. 중화양생익지공을 만나시면 저와 같이 행복한 일이 생기실 것입니다.
2005년 8월 12일
장 귀현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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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
어느날 저녁.-박수완(20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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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득히 멀어져간 어느날 저녁
마당에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별이 반짝이는데
쏴~~아~~ 환하게 빛나며 별똥별 떨어진다
울엄마는 말했다.
별똥별 떨어질때
천석꾼 천석꾼 천석꾼 외치면
나중에 큰 부자된다고.
쏴~아, 쏴~아 별똥별은 떨어지고
난 외쳤다
천석꾼, 천석꾼,천석꾼...........
우리는 하이에나가 되어 밤길을 헤맨다
천석꾼을 찾아서.
요만큼 앞에 있는 천석꾼 때문에
하이에나는 피흘리며 싸우다
쓸쓸히 사라져 간다.
사라져가는 하이에나가 애처로워
앞에 있는 천석꾼을 던져 버린다.
난 필요없으니
하이에나야 가져가
피 흘리며 싸우지 말고 다 가져가.
까마득히 먼 어느날 저녁
마당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별은 반짝이고
쏴~아 별똥별 떨어진다
엄마, 엄마, 울엄마
천석꾼은 필요없어요
다 버렸지만
난 웃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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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
그대 이름.-박수완(200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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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이름 부르지 않음은
만날때 헤어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시는님 어이할수 없지만
말이라도 하고 가세요.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그대 이름 부르고 싶지만
끝끝내 부르지 않음은
멀고도 가까운 날 재회(再會)함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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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다시찿은 길-김형용(200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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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하십니까 중공맨 김형용 입니다
"원장님 이하 여려선배님 그리고 도반님들...
정말 많이 변하였을것이다
오랜만에 찿은 길... 첫 행로가 지리산 운유다 설래는 맘이다
장마의 영항으로 후덥지근한 그러나 따가운 햇살은 없다 가벼운 맘으로 수련장 계단을 오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지난 일들과 나를...
많은 도반님들 속에 나를 반기는 원장님 사무장님 그리고 나를아는 선배님 도반님들 등등 가볍게새로운 도반님들과가볍겨 인사를 나누고 운유길에 올랐다
다소 번잡함 속에 도착한 지리산 성산재 장마의 영향으로 짇은 안개와 약간의 비바람...
이번 운유행은 묵언 이다
하고싶은 말들과 궁금한점등은 하산할때하고 오를땐 철저한 자기 묵언이다
"묵언" 그것은 시련이다 그리고 자아의 수련이고 내면과 외면의 조화다
지척의 운무와 간간히 뿌리는 빗속에 묵언의 행보...주의의 많은 산악인들의
자유 분방한 외침속에 묵언 행보... "아하" 이것도 수련의 의 이로구나
깨우침이다 순간 많은 공법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동안 혼자 수 많은 산행을 하였지많 몰랐다 소리와 느낌과 내 외면의 조화...새로운 세계가 나를 다시 가다듬게 한다 그리고 느끼게한다 알게한다
그동안 행하여 보지 못하였던 많은 공법들을 행하여보고 느껴보았다
알수 있었다 조금씩 동안 수련하지 못한것이 후회처럼 느껴진다
욕심이 나를 멍들게 하였던 일들 등...
정상이다 원장님께서 좋은 파장의 위치를 알아보라 하셨다 순간 두려움이 몰려온다 예전처럼 느낄수 있을까하고 두려움 망설임...
원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의념이 가는곳에 기가간다" 두려움의 의념을 버리고 가벼운의념으로..생각을 바꾸니 나를 알게한다
산상에서의 무극장. 포기조장. 대공.... 도반님들도 느꼈으리라
하산길에 도반님들과 많은 의견을 나누고 싶었는데....
원장님 사무장님 회장총무님 그리고 여려 도반님들 수고하셨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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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두눈을 감고 앉아-신혜원(200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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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눈을 감고 앉아
내 두손을 무릎에 얹고 보니
세상의 시름사 두손에 있는구나
탐욕과 욕심의 무게들로
어깨가 내려앉아
이것이 내 삶속의 굴레요 시름이니
몇번을 털고 털어 내고
다시 한번 무릎 위 두손 얹고
눈물이 절로 난다
내삶의 굴레
눈물이 절로 난다
내삶의 무게
온화함을 지킬것이요
화평함을 지킬것이요
작디 작은 두손을 가진 어깨에
세상의 모든 대도가
이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구나
2005. 4. 6 수요일 밤 10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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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삼부공마치고서-삼부공 맨(200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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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출발에 걱정하면서 차를 힘차게 몰고 도착하니, 체조를 하고 계시는군요
오늘은 주말반이라 인원이 좀 적습니다만, 여러 선배님들께서 나오셨군요
뒤에서 애써주시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삼부공은 꼭 들어볼만한 강의였습니다.
그동안 게을렀구나 하는 생각과, 가까운 곳에서 자주 방문하시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공화도 재미있었고, 기치료과정도 재미있었습니다. 한없이 모자라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평범하다고 여겨졌던것이 크게 다가오기도 하였고, 기본수련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구나 하는 느낌과,
반가운 환대에 기분좋아지기도 하였고요.
제가 또 다른 책으로 고민하던 과정이, 피곡에 들어있어서 한가지 해결책을 찾은 듯도 하였습니다.
저는 요즘 식사량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모자라면 채기, 양기해서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합니다.
삼부공을 했으니 3일 피곡을 해야겠는데 월요일은 수업이 많아서 화요일부터 시행하려고 합니다.
3일이 아니라 4일 7일도 해낼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양을 줄여가면서 겁이 좀 없어졌네요.
피곡은 우리의 자연치유력을 배가 시켜줄거니까 어떤 결과가 나를 찾아올지 궁금합니다.
하루세끼 식사라는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의 관념일 뿐이니까요. 그런 관념의 벽이 의외로 크게 느껴지지만 ,
조금씩 벗어나려고 합니다.
사부님의 공덕을 크게 느끼면서, 후남씨 ( ) 잘 드셔요. 사부님도 가끔씩 ...드려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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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
익지공을 만났을때-하사의 길(20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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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이었던 머리 속이 정리가된다.
하나 하나 쌓아가다 보니 잡동 사니가 쌓인것 처럼
그렇게 느껴 졌는데. 오늘 이렇게 한 순간에
정리가 되니까 그동안에 헛 수고 한것 같지는 않구나.
조바심내고 이걸 그냥 내 버릴까 생각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리며 여유를 부리고 있구나.
사물의 변화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변화가 사물에 영향을 미친다는게
새삼 거대한 진리로 느껴지는구나
자그만한 것에 진리가 숨쉬고 거대한것에 내가 녺아 있는데
죽을때가 다 되어 인생살이 다 했다고 할수 있는가?
식신이 구하는데로 움직이고 금과 은을 구분 못하는데
금이 버려지는줄 모르고 은을 감싸고 도니
금은 종이 조각이로구나.
정리가 되면 일이 순조롭고 마음이 평온하니
진아가 거울에 들어있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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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눈물을 감추고-박수완(200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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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무엇인가?
전쟁이며 투쟁이다.
난 오늘도 광야에 서서
총성없는 전쟁을 하고 아우성 치는 투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과 투쟁에서 패배해
쓸쓸히 퇴장하거나 심신의 상처를 안고 괴로워 한다.
전쟁과 투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온몸을 느슨히 하라.
탐욕과 분노가 사라지고 스스로를 낮추게 된다.
탐욕과 분노를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최강의 무기다.
허나,
어리석은 중생은 탐욕과 분노, 스스로를 높여서
전쟁과 투쟁을 하고 있으니
백전백패해 스스로를 괴롭힌다.
내가 광야에 앉아 어리석은 중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눈물을 감추고 난 말한다.
우리는 어리석은 중생을
중화양생익지공으로 도인해야 한다.
탐욕과 분노를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어
전쟁과 투쟁없는 승리자가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이제 바람부는 광야로 가자.
전쟁과 투쟁에서 패배한
중생을 껴앉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최강의 무기
온몸을 느슨히 하도록 가르치자.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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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공수련을 받고....정창수(20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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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공법을 열과성을 다해 가르쳐주신 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성을다해 아픈허리를 활공해주신 사무장님 감사합니다(남자분은 이름을모름)감사합니다
인터넷을통해 익지공을 처음접했으나 그동안의 학습효과로인해 불신과 의혹을가지고 일단은 모단체의
익지공테이프를 구매해서 공법내용을보고 수련할지말지를 결정하기로하고 테이프를보았습니다
새롭고창조적인 공법을보고 어차피 수련을하려면 정통공법을 이어받은스승에게가르침을받아야
한다는생각에 경주수련원에서 수련을했습니다
원장님께서 항상남을돕는 마음을가지고 남을돕기를 즐거움으로 삼아야한다는 말씀을 듣고
작으나마 아픈 사람에게 활공하는 수련생이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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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수련 소감-윤윤호(200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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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양생익지공, 그 새로운 시작
어떤 인연에서인지 숱한 방황을 격고 중화양생익지공을 접하면서,
1부공 에서부터 한 단계도 쉴 새 없이 장공까지 숨 가쁘게 몰아 붙였다.
마치 사막을 오래 여행하다 오아시스를 만나 허겁지겁 물을 들이키듯.
공법을 수련하면서 경험한 특이한 현상들은 나에게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리라,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몇 가지 현상을 얘기하자면, ‘영광법’으로 수련할 때
나의 몸이 육체이외에 몇 가지 몸이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느끼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이고 뚜렷한 형상은 형성되지 않고 있어 보다 높은 수련을 하다보면
확실해 질 것 같고(운유에 보면 인체 결구가 각기 다른 4가지 층차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장공수련 시 ‘금탑장’을 하고 난 후 경험한 것으로 육체에 대한 느낌이 없어지고
대신 빛으로 된 것 같은 에너지가 중맥을 중심으로 좌우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상하 타원형으로 순환하고 그 가운데를 가슴부위에서 또 하나의 원형 에너지 고리가
감싸 돌고 중맥은 위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상하 관통하는 경험을 하였는 바 그 뒤에는
이런 경험을 해 보지 못했으나, 이 또한 수련을 계속하다 보면 그 정체를
규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장공을 마치고 본격적인 수련 생활에 임하면서 앞으로 공부할 때
지침으로 삼을 몇 가지를 적어 봅니다.
우선은 기린철학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 중화양생익지공의 원리는
물론 다른 문파의 기공이나 동양철학의 핵심을 이해하여 우주와 인간
그리고 삼라만상의 생성. 유지. 소멸의 원리를 깨닫게 되고,
여기에 여법한 수련이 뒷받침이 된다면 자신의 건강과 운명을 건전하게 주도해
나갈 수 있으며 타인의 행복까지도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고 생각됩니다.(사람간의 관계나 운명의 흐름도 기로가 아닌 곳이 없다고
생각되며 인체의 병을 치료하듯이 과도한 기운은 빼내주고 모자라는 기운은 보충해
주면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나쁜 운명도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음에는 수련은 자기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면 “특의”는 그 능력을
쓰는 것으로 여기에 “운유”를 더하여 운유양생이 치료나 강신익수에 그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능력을 쓰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예를 들면 자연풍광중
해로운 신호가 나면 이를 이로운 신호로 전환시켜주고, 우리의 활동이 기를
받아들이거나 기를 내보내는 작용으로 볼 수 있는 바, 우리의 생활자체가 진기의
흐름이 되게 한다면 자신과 주위가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 이룩되리라 생각합니다.
중화양생익지공을 창안하신 종사님과 이러한 공법을 배울 수 있게끔 선구자 역할을
하여주신 원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공법을 누구나 활용하여 행복하고 건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널리 펴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다짐하며 두서없는 글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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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
아! 이럴수가?-김병수(200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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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랐심더~
기가 무엇인지, 관심 밖의 세상 쯤으로 생각 했었는데....
친 동생같은 후배 인재가 며칠여행 다녀오겠다고 말할 때 반갑게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열흘 후, 조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술 한잔하자고 했더니
며칠동안은 술을 자제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후, 여행길에서 후배들끼리 열씨미 대화하는것을 듣고 그자리에 끼어들어
내용을 듣다가 도통 몰라서
"인재야 무신소리고?....."
며칠후 익지공 사무실에서 원장님을 만나뵙고 상담 후 일부공 에 들었어요
새벽1시에 마친다는 것이 2시30분에 마칠 때는 지업어 죽는줄 알았심더
친구와 인재와 저는 소주집으로 가서, 5시까지 확신이 서지 않은 나와의
토론이 이어 졌어요
아침을 그르고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 먹고 원장님 손한번 잡아보고 ^^
기치료 실습 중 '아!' 뭔가 이상한 부드러움이 배위에서 돌고 누르는거 같고??......친구야! 이게뭐고 ?
"기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정신을 잡았읍니다
밥도 묵었고!기도 느꼈고 !친구도 있고!
"취기법"
손바닥으로 시키는데로 슬슬 돌리는데????? 뭐가 진짜로이상한 부드러운 뭉치가 돌면서 커지는데?? "팍"하는소리같은 느낌이 들면서 손이 튕겨나서 옆을보니??
후남씨가 있었어요(야!--기센가베???)
"소주천!!!"
30분지나서 몸이 비비꼬일 때 쯤 ??? 어??뜨거운 줄기가 미려?명문?대추?(옥침,백회,상단전 )모르겠고?? 중단전? 회음? 미려? 명문!대추!
아! 뭡니까 이게 ?
호흡,의념에따라 돌아가는 이뜨거운 열기???
"양기법"
5분 쯤 지나 느껴지는 손바닥 위로 누르는 듯한 기분 종은 압박감!!!"
"기"라는것이 이세상에 존재 하는구나!!
친구야! "인재야! 고맙데이! 원장님 고맙심데이!
같이하신 분 모두 복 마이 받으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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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수련 소감-곽문찬(200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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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수련장에 처음 들어온 때는 3월말쯤이다.
빡빡하게 공부해서 목표했던 한의대도 들어오고, 이제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이래봤자 동양철학쪽이라고 막연히 생각만 했을 뿐,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창업이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공이란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간 나면 한번 가자고 했더니, 그 날 당장 나를 이끌고 동천동으로 갔다.
솔직히 아주 얼떨떨했다. 입회원서를 쓰고, 1부공 수업에 참석하니,
더욱 얼떨떨했다. 뭔가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수업’이란 개념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어도 무슨 무협지에 권법, 검법 이름같이 한자투성이에다가 소주천이라든지,
기를 쏘고 받는다던지 하는 것은 무협지에 나오는 이야기 같았다.
며칠 뒤에 원장님께서 미국에서 돌아오시고, 얼떨떨한 상태에서 다시 주중 2부공을 들어갔다.
2부공은 역시나 더욱 황당했다. 형광등에 매달리라고 하지 않나, 풍선위에 올라서라고 하지 않나.....
그때 기억나는 것은 해보라는 것을 한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원장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솔직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풍선위에 올라서고, 형광등에 매달리고 하면서,
1부공에서 말하는 의념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각에 따라 몸의 상태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1달쯤 뒤에 다시 3부공을 듣게 되었다.
학생 신분에 3부공이상의 공법비용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일단 3부공까지는 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내용이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말 수업 듣고 나니 남는 것은 관상법과 빛 이거 두 개밖에 없었다.
자발공도 잘 되지 않았다. (참고로 이때 후남이 누나는 땅바닥에 굴렀음)
물론 자발공은 부끄럽게도 지금도 잘 안된다.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3일간 피곡하라는데,
안 먹으면 정신 못 차릴 것 같아서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날라리 학생이었다.
3부공을 배우고 난 후, 다소 흥미가 반감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너무 대단한 것을 말하기에,
과연 이것이 진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나는 대구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체조는 하루에 1번씩은 꼭 했지만, 수련은 잘 하지 않았다.
수련을 하면, 별로 성과가 좋지 않아서였다.
물론 학교에서 약대 6년제 반대 투쟁한다고 학생들을 오라 가라 해서
여유가 얼마 없었던 것도 있지만. 그러나, 8월 달쯤 되니까,
모든 것이 다 지겹고, 기공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8월 달부터, 수련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해서 9월 달 개학하면서 수련장에 좀 자주 갔다.
어느 날, 수련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익지공 수련목적’이 보였다.
‘대도의 이를 깨닫고, 진실한 나를 찾고, 심신의 자유해방을 얻기 위해’
“ 대도의 이를 얻을 수 있을까? 진실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원장님께서 수업시간에
“나는 살아 온 환경에 부족함이 없었고, 내가 왜 사는지 궁금해서 기공을 했다.”
라고 하신 것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내가 왜 사는지 궁금하다. 그럼 수련을 하면 내가 왜 사는지 알 수 있을까?
그 물음표가 나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다.
어쨌든, 집에 돌아와서 1부공 책을 처음 펴보았다.
그런데 전에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던 구절들이 모두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특히 6개의 금열쇠 부분은, 내가 왜 이런 것을 몰랐었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6개의 금열쇠를 모르고 지금까지 기공을 하러 다녔으니,
완전 헛공부 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아, 물론 지금도 6개의 금열쇠의 이치를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이름은 대충 안다.ㅋㅋ
그때부터 수련장에 정말 자주 나갔다. 여친도 없고, 활달한 성격이 아니라서
술먹자고 꼬시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수련장을 낙으로 삼고 나갔었다.
9월달쯤에 4부공 수업을 했었는데, 수업보다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갔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런 상태에 빠지니까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음기라는 존재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이미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다.
원장님말씀대로 말이다.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닌 상태에서, 10월,11월이 갔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지 전혀 몰랐다.
내가 스스로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 그건 이미 어느 정도 제정신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도 몰랐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원장님께서 수련장에서 함께 식사하기를 권 하셔셔(원장님 감사합니다!!)
수련장으로 매일 직행했다. 매일 저녁에 원장님과 이야기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특히 지금까지는 특별한 사람인가... 했었던 원장님도 성격이 다소 특이할 뿐,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1월 달에는 1~4부공 수업이 연달아 있었다. 같이 수업하는 사람들은 개성있고 재미있었다.
박선생님, 임선생님, 그리고 스님........ 1월 달은 그렇게 빨리 흘러갔다.
마치 헤딩해서 생긴 멍이 하루하루 빠져서 내려가듯 말이다.
장공수련의 시간이 오고, 장공 책을 펴 보니
.... 소개부분에 벌써 내 가슴을 찌르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대도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왔지, 이런 소술 따위는 배우지 않겠다”
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구절.
정신이 버쩍 들면서, 장공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가 섰다.
이런 것이 벌써 책에 언급되어 있다니... 중공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에는 수업을 5시쯤 마치고, 암실을 만들었다. 창문을 켄트지로 막았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밤에 암실에서 처음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세운 목표. 내가 왜 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아내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헤딩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머리가 매우 아팠다.
원장님 말씀대로 무시해도 아파서 그냥 아픈대로 수련했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암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앉아서 할 것이 기채집밖에 없었다.
하긴 원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뭐를 하든지 에너지가 없으면 허빵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에너지 채집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그냥 빛 수련을 하였다. 확실히 3시간
앉아 있으니 힘 든다. 엉덩이와 무릎이 2시간 지나니 아파온다. 거기다 피곡을 하니,
먹을 거 생각이 자꾸 난다. 복기해도 먹을 거 생각이 나는 거는 똑같다.
그래도 에너지 채집을 해서 그런지, 몸에 힘이 빠지거나, 무기력하거나
하는 증상은 별로 없다.
다음날. 체호흡을 가미하고, 옛일을 관상하였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13살까지 밖에 없고, 나머지는 기억의 조각밖에 남아있지 않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순서를 짜서 13살부터 거꾸로 세어 올라가며 관상해 보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다는 영상은 보이지 않고, 생각 안에 필름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부모님께 잘못한 것이 많다. 그런 부모님께 효도는 커녕 아직까지 부모님을 의지한 채
살고 있는 나.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눈물이 흐르면서도, 부모님께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부모님께 순종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다른 사람들은 이제 조금씩 지친 듯 하다. 쉬는 시간에 말이 줄어들고,
이제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현저히 줄었다. 아니,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나도 좀 피곤하지만, 누워서 헬렐레 하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왠 만 해서는
눕지 않았다. 원장님께서 자지 말고 계속 수련하라고 하신다.
원장님도 새벽 2시30분경에 나가셨는데, 사람들은 거의 기진맥진상태.
6시간을 수련하라는 것은. 그것도 잠자는 새벽에.........
사람들도 의지가 꺾일 만 했다. CD 1바퀴 돌 때 쯤 해서 잠도 오고, 다리도 아프고,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나이도 젊은데, 나까지 퍼지면, 원장님께서 걱정 하실 것 같았고,
또 설마 원장님께서 사람 죽으라고 이런 거 시켰을 리가 없다고,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다.
정신은 비몽사몽하고, 눈앞에 안개 같은 하얀 것이 있기는 있는데, 벌써 몇 시간 전부터
보이던 거라 신비하지도 않고, 무언가 필름이 돌아가는 느낌이 나도 보기도 귀찮았다.
눈앞에 불빛이 번쩍해도 귀찮았다.
그저 하단전을 지키며 에너지를 모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등을 땅에 대지 않겠다는 일념이 있을 뿐.
그렇게 하다보니 창문틈새로 빛이 새어들어 와 있었다. 다소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이 몽롱한 순간...
은희누나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어느덧 내가 누워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정신 차리고 수련을 계속하는데, 몸이 별로 좋지 않다. 정신이 아주 몽롱한 것이....
체조하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무릎과 골반은 사정없이 아프고. 그런데, 갑자기 아픈 것을 즐겁게 느껴보라는 생각이 접수되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 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1년 전에 읽은 책에 있던 내용이었다.
외부의 상황이 어떻든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라고. 아픔을 즐겁게 느꼈다.
정신이 좀 헬렐레 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픈 것도 실제로 즐겁게 느껴졌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하단전에서 불덩어리 같은 무언가 큰 것이 위로 확 치고 올라가서 백회까지
가는 것이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떨렸다. 그러나 마음은 편안하고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오늘도 또 밤새서 수련이었다. 그러나 어제 밤을 샌 여파가 있는지(원래 본인은 밤을 새지 못하며,
밤을 억지로 새면, 다음날 오후쯤 어떻게든 자야함.) 새벽수련 시작하자마자 꾸벅 졸았다..
일어나니, 정신은 좀 맑아졌다. 그러나 몸은 어제보다 더 힘이 빠진 듯 했다.
원장님께서 나를 보고 ‘문찬이 너도 별수 없는 가보다.’라고 하시니, 좀 슬펐다.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옆에 후남이 누나는 이날부터 본 궤도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업을 하는데, 정말 기뻤다. 왜 수업 하는 것이 기쁘지?
원장님도 그동안 많이 신경을 쓰신 듯 피곤해 보였다.
입술이 부르텄단다. 원장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다음날.. 수업을 모두 끝냈다. 모두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들이다.
당당해지고 무언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는 잘 모르겠다. 뭐가 변했는지, 뭐가 달라졌는지... 나는 솔직히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저녁에는 인재형님이랑 케익과 빵을 사와서 같이 먹었다.
마지막 날. 오후에 좌단 논선 시간이 있었는데, 거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잘못한 일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만, 그런 것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고, 또 모두들 그렇게 한 것 같다.
저녁에 매운탕을 먹으러 갔는데, 상당히 럭셔리했다.
값이 일인당10000원정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다.
2월1일
장공은 모두 끝나고, 점심 먹고 조금 있으니 모두들 갔다.
나는 아침부터 머리가 좀 아팠다. 내가 순서에 짜 넣었던 10일이 모두 지나가니,
만 가지 인연이 모두 다시 돌아오는 듯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 수련장 청소를 했다.
이제 돌아가면 아마 2월 달은 여기 거의 오기 힘들 것을 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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