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번호 |
수련 수기 |
|
|
143 |
특별 수련을 마치고 난 후......-조강희(2008.6.30)
|
| 저의 경우 거주하는 대전에서 1부공을 배우고 장밀공과 남소림권등 무공 4종류를 배운후 금년 3월부터 이곳에서 1부공부터 4부공까지 배우고 운유와 특의를 수강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25일부터 1주일간 피곡을 하면서 장밀공을 배워 수련하였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수련을 할때는 트름이 나와 수련이 곤란할 정도가 되는 증세가 6개월이상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해결하고자 원장님과 상의하여 6월 21일 부터 6월 29일까지 특별수련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21~22일은 4부공 재수강이었으며 28~29일은 특의를 수강하였으므로 사실상 특별수련 기간은 23~27일까지 5일간 이었습니다.
23일부터 3일간은 피곡수련을 하였으며,
첫날 수련은 새벽 5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수련하였는데 1시간 30분 정도는 반가부좌 수련을 하고 20~30분 정도 눕기공을 하는 방식으로 수련을 하였으며 반가부좌 수련을 할시는 트름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련을 할 때는 장시간을 하지 않아 잘 몰랐는데 장시간을 하다보니 수련 자세가 좋지 않아 등이 쑤시면서 당기기 시작하고 둘째날은 히프가 아파 앉아 있기도 불편하였습니다.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원장님께서는 웃으시면서 3일간은 힘들지만 3일이 지나면 괜찮아 지면서 자세도 잡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튼 3일째까지는 불편한 자세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4일째 오후부터는 자세가 잡히면서 몸도 자연스럽게 이완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5일간의 특별수련 결과 변화는
첫째로 자세가 나름대로 안정되었고 이완이 쉽게 되게 되었으며
둘째는 기감이 상당이 향상된 것을 느낄수 있고
세째는 수련중 트름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횟수도 줄어들고 그전에는 수련을 마쳐도 가슴이 답답한 것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수련후에는 가슴 답답한 것이 많이 해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특별수련 전에는 어떤 물건을 바라봐서 그 물건의 파장을 정확히 느끼지 못하였는데 정확히 파장을 느낄수 있게 되었습니다.
23일 청주에 사시는 우리 회원님(민감형)께서 오셔서 저와 오전에 1시간 정도 수련을 하시고 28일 특의 재수강을 들으러 다시 오셔서 수련을 1시간정도 같이 하셨는데 수련후 그분께서는 제가 5일전보다 기가 굉장히 강해진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으며 미경선생님께서는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보다 얼굴이 많이 맑아졌다고 하십니다.
제가 이렇게 수련 경험담을 올리는 이유는 이곳 수련장에서의 5일간 특별수련이 집에서 수련하는 몇달의 수련보다 더욱 좋은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우리 회원님들께서도 시간이 허락되는데로 자주 수련장에 오셔서 수련 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저의 경우 기공에 관심이 있던중 우연한 기회에 중화양생익지공을 접하고 배우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되고 발전되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며 이제는 중화양생익지공의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특별수련기간동안내내 지켜봐 주시면서 상담하여 주시고 지도해 주신 원장님, 항상 웃으면서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미경선생님, 그리고 일부러 아침일찍 나오셔서 죽을 써주신 주방 이모...한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또 저녁에 오셔서 같이 수련해 주신 신여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수련에 정진하셔서 좋은 성과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
|
142 |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하루-이소연(2008.6.3)
|
| 운유 가기엔 조금 덥지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경주에 살면서 몇번을 올랐던 그 길을 이제껏 아무 생각없이 올랐나 보다.
오늘은 오르면서 좋은나무, 좋은장소에서 좋은 기를 주고받고 또 나무뿌리나
그루터기에는 좋지않은 기가 나온다는 원장님 말씀에 한편으론 나무를 보호하자는
작은 메세지도 들어있는것 같기도 하다 (내생각)
아이들을 집에 두고 우리부부만 가려니 조금 꺼림칙해서 가자고 꼬셨더니 강한 거부반응은 안보였다.
저녁에 몰래 일기장을 훔쳐봤더니 솔직히 가기 싫은는데 갔다오니까 좋았다는
말을 남긴걸 보니 아주 싫치는 않았나보다. 산을 오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는데
좋은 사람들과의 하루였으니 더 좋았던것 같다 |
|
|
141 |
즐겁고 보람찬 운유를 마치고......-조강희(2008.6.3)
|
| 중화양생익지공을 배운 후 처음으로 운유에 참가하였습니다.
운유이론을 배운 후 실습을 할 때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는데 이번 운유에서 좋은 에너지(파장)와 나쁜 에너지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분들도 모두 즐겁고 활기차게 운유를 만끽하시는 것을 보고 흐뭇하게 생각되었으며 열심히 지도해 주신 윤명구원장님과 언제나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미경선생님 그리고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신 총무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등록하신 후 아직 수업을 받지 않으신 변호사(다른곳에서 2부공까지 수련함)님께서도 운유에 참석하셨는데 운유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등산 할 때와는 달리 피곤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우리 회원님들께서 파장을 정확히 구분하는 모습에 감탄을 하셨습니다.
가을 운유에서는 더욱 많은 회원님들이 참석하여 주시고 한층 더 발전되고 건강한 모습으로 뵈었으면 합니다
참...많은 선물을 준비하여 추첨을 통하여 회원님들께 선물을 주신 원장님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참석자의 50%가 선물을 받으셨는데 선물을 받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에 더 좋은 선물을 받으세요!!)
중화양생익지공 한국총본관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
|
|
140 |
첫 만남 -임성학(2008.1.15)
|
| 안녕하세요!
오늘따라 아침바람이 아름답네들리네요!
1부공 수련잘 마치고 올라오던 중에도 앞으로 기분좋은 상상
했습니다
"잘 왔다고"
체계적이고 정열적인 가르침과 아낌없이 간직했던 공법전수위해
힘쓰신 원장님과 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쭉 중화양생익지공 발전과 행복함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
|
139 |
간절한 기도-조용식(2007.9.5)
|
| 나는 무엇하러
여기에 왔는가 ?
비오는날
한적한 수련장 황토방에서
방석을 깔고앉아
나 자신의 내면 모습과
우리가 볼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하고자 앉았노라
너무 거창했나?
솔직히 말하면
지나온 생활을 반성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앞날을
좀더 활기차고 생동감있게
살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고져 합니다.
또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겸허한 자세로
베푸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봅니다.
ps: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시는분이나 마음의 상처가 심한분이나 않아서 명상하며 정적인 운동을 원하시는분은 언제던지 문을 두드려 주세요? 천년 고도 경주의 맑은공기, 정기와 더불어 친절한 원장선생님의 가르침속에 손에 느끼는 기감을 맛보세요?
노크 해주세요! |
|
|
138 |
기수련을 배우게된 동기와 수련후 달라진점-조용식(2007.4.9)
|
| 2006년 가을 저마다 웰빙시대에 걸맞게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단풍놀이다 아니면 실내에서 런닝머신을 달리거나
강변에 나가 손을 힘차게 앞뒤로 흔들고
걸어가며 생활의 활력소를 찾는동시에 체력을 강화할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너무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한해였습니다.
저는 1남1녀를 두고 직장생활을 하며 불혹의 나이를 갓넘은 가장입니다.
인생의 절반이라 모든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헤쳐 나가야할 시기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여 병원에 가보니 우울증도 있어니 꾸준한 운동과 믿을만한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해보라고 권유 하더군요?
해서 집사람이 우연챦게 명상수련을 한번 해보는게 어때요? 저번에 아가씨 말고원장님 나오라고해 의 책을 읽어니까 기수련을하면 애들 키도크고 한다니까 우리가족 한번해봐요?
처음에는 새로운일을 한다는것이 불안,초조,의심으로 가득차 망설였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애들,집사람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못난 아버지,남편은 되지말자며 생각을 바꾸고 집사람의 권유로 기사랑센터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황토수련장을 지나 사무실에서 원장선생님과 미경선생님에게 제생활상과 건강상태를 애기하니까 대뜸 하시는 말씀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바로 어떻게 40여년을 살아온 성격이나 생활을 하루 아침에 바꿀수 있습니까라고 반문 했습니다.
급한 생활태도와 몸을 항상 느슨이하고 수련을 한번 해보세요? 일단 기치료부터 받으시면서 나중에 체조를 병행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일단 수련을 접어두고 치료부터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일주일간 기치료를 받아본결과 답답한 가슴이 뻥뚫린것같이 시원한 느낌을 받았으며 기공에 대한 사이비종교같은 이상한곳은 아나냐는 주의의 시선과 오해를 떨칠수가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처음 수련을 할때는 양생검지장,용동관기법,떨기공의 기체조 가 모두 어려웠다.하지만 1부공법의 이론에
양생검지장,용동관기법,떨기공의 사무장님의 이론 강의를 통하여 자세,호흡,효능.효과등을 알수 있었다.
양생검지장은 역복식체호흡으로 하반신튼튼,위장계통특효가있슴.용동관기법은 자연호흡으로 척추를다스림.
떨기공은 탁기를배출하며 신경쇠약,어지럼증효과 있습니다.
이제 6개월쯤 지났지만 우리가족은 많은변화를 가져왔어요?
저는 위장이 안좋아 항상 묽은변을 자주 보았는데 이제는 식사할때 느긋하게 꼭꼭 씹으며 먹는습관과 채식 위주로하며
운동을 겸비하니 가래떡같이 건강한 변을 많이 봅니다.
알르레기 비염으로 고생을 했는데 콧물감기는 전혀없어요 이부분은 체조의대추혈을 문지른 덕택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체조와 명상을 통하여 기운행을 함으로서 몸안의 독소는 배출하고 화가 치솟으면 하단전으로 내리는 생각의힘 즉 (의념력)을 강화하여 스트레스를 줄일수있었다.우리딸은 얼굴에 기미가 있었는데 원장선생님의 치료와 수련장의 기파장으로 인하여 혈이 잘통한결과 어느순간 사라졌다.
집사람은 항상 척추가 구부쩡한 상태였는데 용동관기법의 체조와 접공태 자세와 기운행수련 명상을 통하여 많이 좋아졌습니다.아직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이 웃음을 찾을수 있었서 좋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항상 덕을 많이쌓으라는 원장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라는 진리를실천에 옮기고져 오늘도 힘차게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힘들때마다 많은 대화를 받아주신 원장선생님,김선생님께진심으로 감사드리며,사무장님이하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수련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가슴에 되새겨준 제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사랑해요 여보 우리가족 화이팅 ! ! ! |
|
|
137 |
1부공 재수강을받고나서-조용식(2007.2.12)
|
| 이제 기공의 걸음마 단계이지만 1부공을배울때보다 재수강하여 듣고나니 기의올바른 수련방법을 알것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기체조도 온몸에힘이 들어가 양생검지장,용동관기법등을 할때면 다리도 아프고 땀이 날지경이었습니다.
사무장님의 이론수업을 받고나서 몸을 항상 느슨이 하고 숨을 쉴듯말듯 못느끼게 의념을가지고 우주의 좋은기를
하단전에 모으니 손이 뜨거워 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를받아들이는 자세는 항상 접공태를 취해야한다는
원장선생님의 말씀과 우주는 넓다하되 마음속에있다는 열반송의 싯구절이 가슴속에 와닿았습니다.
사무장님의학춤,김선생님의요가,이선생님의무술의 자발공또한
일품이었습니다.정말로 의념력이 대단하다는것을 실감하는대목이었습니다.
저도 수련을 열심히 하여 한단계 레벨업되는 그날을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늘친형님같이 편안한 원장선생님과 최선을 다해 치료하시는 김선생님 언제나
묵묵하게 지켜보시는 이선생님,문찬선생님과 사무장님께 진심으로 고맙게생각하며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합니다. |
|
|
136 |
4차 장공반을 마치며... -지산(2007.1.31)
|
| 익지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장공반에 여러 선배님들의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데에 감사드립니다.
4기 장공반을 마치고 몇 자 적어 봅니다.
이번 7일간의 피곡을 아주 효과적으로 열심히 하여
피곡의 효과를 110% 보았습니다.
제 몸은 무척이나 가볍고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새처럼 나는 느낌이 듭니다.(피곡의 효과)
그리고 소주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1부공~4부공까지는 2차선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는데,
장공반을 마치고서는 8차선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소주천이 시원스럽게 잘 돌아갑니다.
돌리고~ 돌리고~ 송 돌리고 송~ 방송~~ 방송~~ ^^
가족여러분!
1부공~4부공 장공반 재수강 많이 하세요.(몸이 아주 좋아집니다.)
4기생 여러분! 장공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열심히 수련합시다!
몸을 청결히 한 다음-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아, 그리고 황남빵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ㅎㅎ ☺
-지산- |
|
|
135 |
[판도라의 상자]장홍보 창시자를 생각하며-박은희(2007.1.3)
|
| 2007년 새 해에 장홍보 창시자가 생각나 적어 봅니다.
---- [판도라의 상자] ----
2004년 3월 초 장홍보 존사의 초대장을 받으신 윤명구 원장님은
나에게 ‘방문’을 위한 ‘선물'을 주문하셨다.
딱 들어맞는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감각 상태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같다.
구체적인 것은 떠오르지 않고 안개에 쌓여 있는 그 무엇인가를 알아내지
못해 전전긍긍 하는 시간이 거의 한 달이 지나 출국 날짜 하루 전 날이
되어버리자 윤 원장님은 마음이 급해지셨다.
연막에 가려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내일까지 생각나지 않으면 에밀레종으로라도 때워야지 ” 하며 포기하고 이른 저녁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다 잠자는 가운데 느닷없이 ‘판도라의 상자’가 떠올랐고 불을 켜 시간을 확인하자 새벽 2:00였다. 뭔가에 홀린 양 후다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판도라의 상자’의 내용을 자세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섬광이 팍 부딪치는 그 확신의 감각, “이거야” 하고 프린트 물을 뽑아 들었다. 연거푸 읽고 난 후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윤 원장님이 받아들일 실지는 의문이었다.
제우스신의 신신 당부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 보았고, 그 속에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기 직전
겨우 뚜껑을 닫아 건진 건 ‘희망’ 하나,
이 신화의 내용은 장홍보 창시자가 처한 그 때의 상황과 꼭 같았다.
‘판도라 상자’ 속에 남은 유일한 ‘희망’
‘창시자’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
대한민국에 있는 열린기사랑센터
한국총본관 이었다.
출근 하신 윤 원장님께 프린트 물을 올리고 거의 낙담하다시피 반응을 기다리는 데 뜻밖에 “한 번 준비해보라”하시며 비용을 내어 주셨다.
얼떨떨한 맘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선물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물건을 구하고 이 선물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신화의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등 숨을 몰아쉬며 준비 완료했다
붉은 색 비단 바탕에 목단 수가 노인 전통함 속에, 창시자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고이 접어 편지와 함께 넣고 꽃잎한지로 포장하여 원장님께 전했다.
다음 날 새벽 윤 원장님은 LA행 비행기를 타셨고 남은 나는 긴장 속에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초대 날짜에 맞추어 도착한 윤 원장님을 장홍보 창시자는 5일이나 더 기다리게 하셨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그 분이 무례하시다는 생각을 했으나 후에 알게된 사실에 의하면 창시자께서는 한국 총본관 대표를 맞이할 준비가 덜 되 시간을 끈 것이었다.
LA에서는 만찬을 즐길 시간, 난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있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 진동 소리에 전화를 받자, 강병석 원장님(윤 원장님과 동행하셨던 전문의)은 짧은 인사용 농담을 하시곤 윤 원장님을 바꿔 주셨다.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사무장! 니 생각이 적중했다”는
그 한 말씀에 심장이 고동쳐 오르며 온 몸을 전율케 하는
그 ‘희열’을 가눌 수 없어 황성 공원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았는지---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현실화 된 결과물로 탄생되었을 때 오는 그 ‘희열’을
아는 사람, 터질 것 같은 심정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나의 ‘은사님’(꽃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께 벌벌거리며 폰번호를
눌러 상기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의 경이로움,
그 경험은 내 생애 최고의 가치 중에 하나가 되었다.
19일간의 여정을 끝네고 돌아오신 윤 원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창시자께서는 세계 국기 중에 ‘태극기’를 가장 좋아 하시며 음양오행을 들어
설명하시면서 같은 맥락의 ‘천화문화’ 홈페이지를 처음 공개하셨고, 만찬 시간 중 1시간 이상을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즐기셨다한다.
요즘 윤 원장님은 그 분을 자주 회상하시는 듯하다.
직접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다 밥 위에 얹어 주시던 소탈한 고인을,
문밖까지 나오셔서 두 손 흔들며 배웅하시던 그 고인을-----. |
|
|
134 |
여기서 20분정도 있다보니 기감이 느껴지네요-오지윤(2006.1.23)
|
| 검색창에서 우연히 들어와 질의 게시판을 봤습니다.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곳에 20여분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
좋은 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단전이 따뜻해지면서 아래로 그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 드네요..
^^;
기가 느껴지는 사이트라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 적고 갑니다.. |
|
|
133 |
계룡산 운유 소감문~♥-윤영(2006.5.20)
|
| 5월이 되자하니 산과 들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5월의 날씨에 취해 어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를 무렵... 운유 소식이 들린다. 어찌나 반갑던지...
사실 처음엔 운유의 매력에 매료되어 익지공에 빠져들었던 나이기에 그 반가움은 더욱 크다.
이번 운유 장소는 계룡산이라 한다. 도사들이 많이 모인다는 계룡산에 진정한 도사님들이 함 떠나주는 순간...^^
계룡산이야 워낙 명산이어서 운유 장소로는 손색이 없긴 하지만 내가 대전 시민만 아니었더라두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았을텐데...
사실 집이 계룡산과 워낙 가까워 심심하면 드나드는 놀이터 같은 곳이다.
아무래두 이번 운유는 나의 놀이터로 가야할 듯 하다.^^
어쨌거나 워낙 명산이기에 계룡산의 산세와 기운을 접해보기에 익지공 수련생 분들에겐 한번 와봄직한 곳이기에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이라 여겨지긴 한다.
5월 13일 5시. 집결 시간에 맞추어 계룡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계신다. 가끔 수련장에서만 뵙다 계룡산 안에 어우려져 있으니 그 반가움은 더 큰듯하다.
저녁 식사 전 숙소 앞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광지로두 유명한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시끌하다.
사람 구경에 계룡산의 자연 구경까지 정신이 하나두 없다.
하지만 간만에 느껴지는 여유와 코끝으로 느껴지는 맑은 산바람이 꽃내음을 가득 싣고 들어오니 그 행복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나 어둑할 무렵 계룡산은 처음이라 나름 운치있고 심히 좋다.
저녁 식사 후 가진 작은 단합회에선 익지공 수련생 분들의 가무를 확실히 보여준 듯...
수련을 통해 가무도 자연스레 된다더니... 정말 그런듯하다. 간만에 느껴보는 즐거움..
다음날 아침 6시쯤 피곤함은 극에 달했지만 계룡산의 맑은 공기와 산햇살에 도저히 눈을 안뜰수가 없다. 안개속으론 맑은 햇살이 내비치고 찬 산공기가 코끝으로 들어오니 진정 신선이 된 기분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9시가 조금 안되는 시간 우리는 본격적인 계룡산 운유를 시작 하였다.
가방엔 생수 한통과 수건을 챙겨들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계룡산 입구는 동학사라는 절까지 평평한 오솔길로 이루어져있다.
좌측엔 맑은 옥색 계곡물이 쫄쫄 흐르고 우측엔 나무와 바위가 어우려져 있다.
남계룡산은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 곳이기에 조용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이랄까...
길 양옆으로 걸려져 있는 색색의 연등 아래로 우리는 천천히 자연을 느끼며 걸어갔다.
원장님께서 선두로 출발하셔서 나무와 바위의 기감을 비교해가며 기채집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그 동안은 그저 후딱 절에만 다녀오기에 급급한데다 그저 흔한 나무와 돌로만 여겨져 별 신경 안쓰고 다녔는데 각각의 기감을 관찰하고 느껴보니 새로운 느낌이다.
내가 알던 계룡산이 아닌 생소한 곳처럼 느껴졌다.
나무와 바위의 대상 하나하나에서 느낄때의 느낌이 차이남이 재미있었고, 나쁜 기운과 좋은 기운의 차이도 구분되어지니 신기하고 재밌다.
동학사 입구까지 올라가니 마지막 화장실과 식수대가 보였다. 드디어 진정한 등산로로 접어드는 곳이다.
동학사까지는 수없이 가보았지만 계룡산은 항상 거기까지였다.
맑은 5월의 아침공기가 정말 어우러지는 날씨이다. 분명 햇볕은 활짝 비추는데 찬 산공기와 어우러져 뜨겁다기 보단 푸근한 느낌이다. 그리고 등산하기에도 공기가 워낙 시원해서 상큼하기 이를 데 없다.
관음봉 올라가는 입구로 향하였다. 사실 계룡산의 실록은 워낙 유명하여 계룡8경중의 하나라 불려지는 곳이다.
그 동안은 입구에서만 어슬렁거리다 직접 오르기는 처음이다. 그렇기에 이번 운유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원장님께서 필두로 모두가 계룡산의 자연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채집하고 가니 더 재밌는 경험이다.
중간쯤 올라갈 무렵 원장님께서 잠시 멈추신다.
관음봉 등산로 중간 중간에 기감이 좋은 장소에서는 원장님께서 위치지정을 해주셔서 기채집을 유도시켜 주셨다. 원장님은 수련생분들 각각에 맞는 장소를 정해주셔서 수련을 해보며 느낌을 탐지해보라 하신다.
처음엔 찬 산 공기에 춥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앉아있으려니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감싸줘서 춥기보단 오히려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맘이 편해지니 몸 또한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한참을 눈감고 있으려니 무념무상 상태가 되어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없어져 나와 바깥의 경계까지 아무런 느낌이 없어진다.
한참 후 눈을 떴다. 다들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가득이다. 나또한 잠시 동안이었지만 간만에 생각을 끊고 푹 쉰 느낌이다. 각자마다 수련시에 관찰되어진 것에 대해 얘기하며 나누고 있자니 정답기 그지없다.
다른곳의 기채집을 위해 산행을 지속했다. 다음 코스는 암석 계단으로 이루어져서 조금은 경사진 곳이다. 약간 숨이 가파오른다 싶더니 하늘이 가깝게 느껴진다. 산도 더 깊게 느껴지고...
숨을 죽이며 정신 차리고 산앞을 보니 은선 폭포가 보인다. 계룡산 골짜기 깊은 곳에 그리도 아름다운 폭포가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거늘... 그 모습에 감동이 요동쳐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래서 계룡산이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 했구나 싶은것이 정말 감동적이다.
멀리서 온 분들은 이 아름다운 절경을 보기위해 후회가 없을 것이고, 나는 가까운 곳의 보물을 이제야 찾았기에 후회가 없다. 순간...계‧사‧모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확~ 생긴다.(맨날 감동 받을 때마다 어설프게 만든 단체가 너무 많아 바로 맘을 접어버리긴 했지만...^^)
날씨 정말 좋구..공기는 말할 필요두 없고..경치 또한 두번 말하면 섭섭해 할 정도이고... 산세 또한 기이하며 신비롭구...
한켠에 앉아 수련을 하고 있자하니 신선이 된 듯한 이 기분...
멀리 보이는 은선 폭포의 옥빛 물속엔 꼭 선녀들이 목욕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상상~~^^
그 어떤 보약을 먹었던들 이보다 더 좋으랴..
원장님이 설명해 주시는대로 계룡산의 좋은 기를 채집하며 가니 모든게 다 새롭다.
운유 장소가 계룡산이라 했을 때 서운했던 맘은 온데 간데 없고...원장님과 수련생분들과 다같이 계룡산 기채집 탐험을 다녀보니 내가 알던 그 계룡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무래두 내가 다녔던 어설픈 산나들이와 운유의 차이인듯 싶다. 혼자 다녔을 때 가끔 해보는 수련시의 느낌과 원장님이 설명해주시는 부분대로 가는 수련시 느낌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역시 이번 운유 또한 대 만족이다. 또다른 계룡산을 맛 본 듯 하다. |
|
|
132 |
봄 (春)은 언제 옵니까?-박수완(2006.3.27)
|
| 지금은 한 겨울(冬)
바람부는 산기슭에 웅크려 앉아
난 기다린다, 아름다운 봄(春)을..........
봄(春)은 언제쯤 올까?
바위틈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봄(春)을 준비한다.
준비하는 자(者)에게만 봄(春)이 오는 법
오늘도 난 바위틈에 서서 봄(春)을 꿈꾼다
광야에 가득찬 중생(衆生)을 대도(大道)로 인도하니
꽃이 만발하고 바람은 멀어진다.
익지공 수련생은 모두 봄(春)을 준비하자
광야에 가득 꽃을 피우자. |
|
|
131 |
인과와 사병 소감문.-윤영(2006.3.19)
|
| 인과와 사병...
처음 들었을땐 당체 이건 또 뭐야??영 쌩뚱맞은 이름이었다.
역시 '기'는 사용하는 단어조차 참으로 이상하구나...
형부님께선 작년 12월말 처음 나에게 '인과와 사병'얘기를 꺼내시며
이 수업은 꼭 들으라 하신다.도대체 뭘배우는 거길래..
"그게 뭔데요??"
질문을 드리자 형부께선 귀신 쫓는 수업이라 하신다.
핫..당황-_-;;
'기'라는걸 받아들이는거 조차 버거웠는데 이번엔 '귀신'이라니..-_-;;
나에겐 그러했다.귀신의 존재를 못믿는다는건 아니지만 거부감 드는 존재로 밖엔 표현이 안되는 그런 거였다.
'기'라는걸 나름대로 후다닥 배운긴 했지만 급하게 배워서인지 뭐가 뭔지도 모르던 나에게 귀신쫓는 수업이라니..
마음에서는 동요됨이 없는데 꼭 그 수업은 들어야 한다는 형부님 말씀에 머리속에선 고민이 일었다.
특이공능같은걸 이용하여 치료하는걸 배우는 수업을 '특의'라 한다는데...나에겐 별 해당사항이 없어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사항이 없어서라기 보단 별 매력이 일지 않았다.
'내가 왜'라는 마음이 컸던 듯하다.
"들을거지??" 머리속에선 '절대 안들어야지' 하면서도
입에선 "들어야죠..."
형부님의 눈빛에 이거 안들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특의 수업에 맞추어서 친구와의 약속이 잡혔다.
'나하고는 인연이 아닌 수업이구나..' 생각하고 있을때쯤...
인과와 사병 수업이 연기가 되었다.
사무장님의 연락을 받고 그 순간 어찌나 허전하고 서운하던지..
어차피 하였더라도 못들었을 그 수업에 나도 모를 어떤 이끌림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수업땐 뭔일을 쳐서라도 꼭 들어야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1월의 수업 일정엔 특의3은 잡혀있지 않았다.
새해가 밝아서인가 머리속은 어찌나 새하얗던지...
비운 마음으로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각오로 재수강을 시작하였다.
1,2월은 1차 복습기간이라 생각했기에 틈틈이 주어진 시간을 이용하여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어찌봄 조각조각이라 머릿속 정리가 쉽진 않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주는 시간이 되었다.
뭣모르고 뛰어 들었다가 시작은 했으니 그 끝은 봐야겠기에 막연했지만 마음으로 짬짬히 시간을 내어 수업에 임하였는데 막연한 마음이 어떤 큰 공처럼 가슴 한켠을 채우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시간이란 놈도 자연스레 해결 되었다.
처음엔 시간 조절이 안되어서 경주에서의 수업이 조금은 부담이었다.
1년은 해봐야 그래두 대략 그 형체라도 알거 같기에 뛰어들었던건데...주말이 바쁜 나에겐 그 시간조차 내가 사치부리는거 같기도하고... 매일 주중엔 시간을 쪼개고 주말에 쪼개진 시간을 이용하여 주말엔 경주로 향하고...
점점 적응해가는 내 자신을 느낄때쯤 시간도 자연스레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련을 계속 하다봄 자연스레 내 파장에 의해 시간정리도 저절로 된다더니...^^
재수강을 하는동안 또 새롭고, 또 신기하고...
나름대로는 안졸구 열심히 들었다 생각했는데 막상 재수강하니
'내가 이런걸 배웠었구나' 싶기도 하고..놓친 내용두 새삼 새롭구...몸으로 느껴지는 기감도 훨씬 자연스럽게 강하게 다가왔다.
심한 지둔형이라 생각되어 특이공능은 고사하고 자잘한 기반응도 없겠구나 싶었는데... 몸으로 계속 반응이 오니 수련의 재미가 더욱 커졌다.
몸도 확실히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심한 스트레스와 예민한 성격때문에 병원을 어찌나 다녔던지...얼굴의 여드름들(나름대로는 귀여운 흔적들이라 외치긴 했지만..어찌나 우울했던지..)
어느덧 사라지고 없어졌다.
뭘 바라고 시작했던건 아니지만, 미혹한 몸덩어리에 크게 욕심이 있었던것도 아니지만 막상 몸이 변화하니 그 기쁨이 배가되었다.
어찌나 잘했나 생각되던지...나만은 몸에 큰 욕심이 없는줄 알았더만..^^
3월 11일 기다리던 인과와 사병 수업이다. 일이 있어도 싹 정리하고 가야겠다 생각은 했지만...내가 노력안해두 시간이 정리가 된다.(아~이 즐거움^^)
설레임 가득한 나를 꾹~누르며 경주로 향하였다.매일봐도 반가우신 수련장 분들...흐린날이지만 얼굴엔 햇살가득한 미소가 한가득이시다.
전에 절에서 천도제하는걸 본기억이 났다. 도대체 '치료'라는게 어떤걸 말하는건지..천도제처럼 극락으로 영혼들이 잘 갈 수 있게끔 길을 닦아주는건가 싶기도 하고...
한땐 나에게도 음기가 들어찼나 싶어서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작은 근심이긴 하지만..
그러했기에 이번 수업을 듣고 '좀 더 지혜롭게 이겨내야겠구나' 싶기도 했고...
음기의 원인은 전생의 인과에 의해 하나의 '파'형태로 우주속에 떠있다가 그게 전생에 대한 나의 업에 대한 결과로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음기의 대상은 '나', '너'가 아니라 '우리모두'인 것이다.
조금은 지금 나의 모습도 후생의 '과'로 나타난다는 생각에 지금 현생에 업을 쌓지 않기 위해 더 바르게 죄짓지 말고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양의학에서 치료 못하는 환자들을 불치병으로 분류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어쩌면 그것또한 사병의 한 형태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다만 어찌보면 무당놀음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해당되는 중요한 이 부분을 피해갔는가 싶기도 하고..
'음기'를 두려워하고 피하려했던 나 자신 조차도 아마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미치자 사실 수업의 중요성이 새삼 깊게 다가왔다. A4용지 40장 가까운 내용을 원장님의 설명을 들어가며 듣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저녁때 이루어진 치료는 한차원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기는 이승을 떠도는 영혼에 불과하다.
결론은 그건 죽은 혼으로밖에 안된단 생각이다.
하지만 치료과정에선 음기 자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여서 음기를 불러내어 스스로 몸밖으로 빠져나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끔 인도해주는 방식이다.
처음보는 부분이지만 치료의 방법에 큰 매력이 일었고...
그 동안 보았던 그 어떤 치료법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적합한 방법 같았다.
원장님 말씀중에 반은 귀에 걸리고 반은 귀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했지만 수업 자체에서 주는 중요함과 계속되는 내가 알지못하는 파장들로 인해 만족감이 나를 뿌듯하게 했다.
'인과와 사병'수업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씀에 어찌나 감개무량하던지...
더도말고 덜도 말고 '20%만 소화하고 가야지'라는 심정으로싶은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였다.
탐지법과 치료법,여러가지 수련 방법들..물론 교재를 덮으면 가물거리긴 했지만 많은 내용을 배웠다.
사실 2틀만에 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소화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다만 음기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수업같았다.
수업 중간중간 졸기도하고, 웃기도하고, 열심히 듣기도 했지만 수업내내 수련장안에 흐르는 파장또한 다른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덕분인지 콧잔등 가득한 피지들도 쏙~빠지고...몸두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한동안 나의 고민이었던 '음기'라는 것도 마음에서 내스스로가 만든피조물에 불과하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크게 바라는것도 없지만, 한계단 한계단 오르며 장거리가 될지, 단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천천히,서서히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가끔은 어떠한 장애물로 인해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원장님이 내주신 또다른 숙제이기에 잘 이겨낼 수 있을듯하다.
비몽사몽간에 두서없는 글이라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마도 '익지공'이 아니었더라면 많이 돌아가야 했을텐데 지름길로 인도해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
|
130 |
제3차 장공반 소감글-박종환(2006.3.2)
|
| 안녕 하십니까?
지난 열흘간 생각하며 꿈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딸을 위해서라도 온힘을 다해 참고 인내 하며 견디어 낼수 있었답니다.
원장님 이하 도반님들의 힘이 크나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지난1년 저인생을 살아 온날보다 더긴세월 인것 같습니다.
눈물과 한숨 애들이 볼까봐 감추며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3시간씪 수련한 것이 사실 제겐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참고 이겨야 된다는 일염으로 수련 하다보니 온몸은 만신창이 되어 힘도 없고 시간만 나면 누워지냈죠
그러다 3시간씩 이리라도 앉아서 그냥 무거운짐,걱정삶 모든것을 내려노으니
눈앞에 뿌연 안게가 보니 거짓말 처럼 내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이마엔
무엇인지 모르는 무언가 쏵하고 들어 오드랍니다.
원장님 께서 말씀하시는 인연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함에 늘감사 하며 이각박한 세상에 가부자 틀고 앉아 수련 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부자가 된기분이랍니다.
장공을 마치고 도반들과 둘러앉자 소감 예기할때 저도 모르게 큰절을 올렸답니다.
고마움과 회한의 눈물이 왈칵 쏜아져서 못난 모습만 보인것 같습니다.
이제 무슨일이든 자신만만하고 자신있게 잘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수련장에도 열심이 가야하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
경제 적인 문제 일 지송 합니다...
집에서 라도 수련 열심히 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딸을 돌바 주셔서 고맙습니다.항상 감사합니다. |
|
|
129 |
두서없는 장공소감 올립니다.-이상모(2006.2.20)
|
| 수련소감(3차 장공반)
먼저 중화양생익지공을 사랑하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윤 명구 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또한 우리 이쁜 사무장님께 감사드리고 중화양생익지공을 사랑하시는 선배님과 도반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두서없는 소감의 말을 전할까 합니다.
저는 익지공을 만나기 전까지 기의 세계가 무엇인지 또한 무슨공부를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익지공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공부하는 곳이 중화양생익지공이어서 (다른 분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나중에야 익지공을 만난다니) 아무튼 저는 원장님의 친절한 교육과 선배님들의 따뜻한 배려로 1부공을 시작으로 4부공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간만 흘러가고 보니...
먼저 무엇을 익히고 공부하고 수련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청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 기대하던 장공반이라 과연 내가 피곡하면서 수련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무장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은 좋았었지만, 열심히 할려는 마음만 가득할 뿐 몸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느낄때 10일간의 수련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그러나 윤명구 원장님의 깊은 배려와 가르침으로 인해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지금까지 50년을 살아오면서 무엇을 하고 또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 것인가....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나는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 왔을까.... 또한 나의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지난세월 과거의 아픔들이 되살아 나면서 분노와 원망 슬픔의 시간들이 하염없는 눈물이 되어 왜그리도 흘러 내리는지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린 그 눈물이 참회의 눈물이었음을 저는 느꼈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시간과 생각만이 가득하던 지난 세월 후회와 슬픔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으로 되돌아 옴을 느끼면서 한번 더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소중하고 귀한 순간이 되어 좀더 오랜 시간 수련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년에 한번이 아니라 두 번정도 장공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인데...)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여주신 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또한 사무장님께도 감사드리며 수련 10일 동안 힘든 시간을 함께 하신 3차 장공반 도반님들께도 수고하셨다는 말씀 드리고 내내 건강하시길 빌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칩니다.
중화양생익지공 “화이팅!!!!!!!” 3차 장공반 “화이팅!!!!!!!”입니다. |
|
|
128 |
장공 수련 소감 올립니다.-원종희(2006.2.12)
|
| 장공수련소감
가장먼저 수련소감을 적자면,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란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글은 장공 수련생으로 보다는 부끄럽게도 아직 초심인 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1월 7일 오후 3시까지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왜냐면 장공반에 들어 갈 수 있는 준비생이 아니었기에.... 주변 몇분께서는 몇 달전부터 준비하시며 장공을 기다려 왔다고 하셨다. 매사에 소심하며 의욕감이 부족했던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련장 도착후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원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진 눈길에.....
미경선생님, 사무장님, 문찬선배님의 든든한 후원에 새삼 가슴이 따뜻해 짐을 느꼈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또 다른 느낌으로 맺어진 가족으로....
명희언니와 반장님이 같이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고 상화는 좀 아쉬웠지만, 명희언니는 그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별 내색없이 끝까지 잘 견디었고 반장님도 약 복용 중이신데도 7일 피곡을 잘 보내셨다. 같이 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좀 힘들긴 했지만 의미있는 나날들이었다. 그날 그렇게 많은 인원에 놀랐고 열흘이라는 긴 시간에 아이에서 할머니까지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조금은 설레어지고 조심스러워 졌다.
수업 첫날
몇 시간이 자나자 벌써 안압이 올라가고 누군가 머리를 뒤에서 살짝 밀기만 해도 오른쪽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수업시간 10분을 남겨놓고 난 자리를 뛰쳐나와 5층 사무실에서 달콤한 설탕물을 마셨다. 증세는 안정되었지만, 난 참지 못한 40분으로 인해 열흘이라는 시간과 장공이라는 훌륭한 수업을 사탕과 바꾸어 버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다.
사탕은 하루에 3개를 먹었다고 했지만, 사실 4개를 먹었다. 무식이 용감으로 다른 수련생에게 베풀지 말아야 할 친절까지 베풀었다.
해야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목숨을 걸었다 보니 원장님께서 바라셨던 어느 만큼의 기대치에 전 아무것도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암실 수련
처음 3시간 수련 중 한시간은 호기심 두시간째는 답답함으로, 나머지 1시간은 오로지 5층에서 내려올 원장님의 발자국 소리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답답하고 긴 시간들이었지만, 많은 생각과 지나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기의 삶, 현실, 미래에 대한 희망, 가족, 친구, 먼저 떠나버린 사람들.........
원장님께서는 에너지 채집을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와집도 몇채나 지었고 중학교때 보았던 순정만화도 영상처럼 떠올랐고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사랑의 삶을 꿈꾸며...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크처럼... 안개자욱한 새벽 수은등이 켜진 자리를 거닐며 칼바도스를 마셔보는 상상을....... 아이아크가처럼 능동적이며 충실한 삶을 사는 것.....
그러나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내용처럼 그 높은 꼭대기에는 현실과 지금 그대로의 나 자신 밖에 없었다. 이젠 나 자신을 위해 주변의 삶에 수다스럽지 아니하며 조용히 이해하며 지켜만 볼 것을 다짐한다.
결과
오른쪽 어께죽지에 10년정도 통증에 시달리던 곳이 있었는데 수련중에도 몇일 동안은 통증에 어떻게 하면 덜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8일째부터는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옆자리에 앉은 수퍼맨과 성철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아파도 조금만 더 참고 수련에 임하면 좋아질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하나는 조금이나마 수련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우고 깨달음 누구나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어떤일에 서로 다른 판단과 견해를 말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이 내 자신과 같지 않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소외감을 느끼며 분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미경 선생님과 정호어머님께 더 배우며 더불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내며 느낀 점이다.
“남을 돕기를 즐거움으로 삼아야 하며 넒은 마음을 가져야 하며 고상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저차원적인 취미에서 벗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부공에서...
마지막으로
미정이 가족 파이팅!!!
미정이 부모님께서 흘리신 눈물의 의미에 가슴이 뭉클했다. 종원이의 어눌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또 찡함을.. 성민이, 정호, 학이, 미정이, 두헌이 정말 대단하고 장해요..
두헌 자주 만나자.. 공부 열심히 해라!!!!!
내년 장공반에는 이른 봄에 씨를 뿌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땀흘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준비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적으며 마음을 표현해 보는 시간이 너무 없었던 삶이라.. 마음 따로, 글따로 인 것 같습니다.
원장님, 후남이, 깜찍이 사무장님, 생각 깊은 미경선생님, 잘생긴 문찬선배님께 장공반까지 이끌어 주신 크나큰 마음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3차 장공반 동기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
|
127 |
3차 장공반을 마치고-송미영(2006.2.9)
|
| 먼저 장공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원장님이하 사무장님 그리고 미경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종훈이 아빠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감사를 드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익지공으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종훈이에게 늘 관심을 가져주시는 제동생 부부 그리고 늘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미정이네 식구들 그리고 지휴스님을 비롯한 여러 도반님들 그리고 우리종훈이를 장공까지 할 수 있도록 힘을 준 후남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한 말씀을 다 하자면 밤새도록 이글을 써도 모자라겠습니다.
장공의 의미는 너무 커서 제가 감히 글로 표현하기 어렵고 아직 그 맛을 보기에는 저의 수련이 너무 미미합니다. 언제쯤 장공의 의미를 깨달을수 있을지 ...
저는 장공을 마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구나 내가 안다고 생각한것은 아는것이 아니구나 이길이 멀고 험한 길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끊임없는 수련으로 나를 단련시켜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도반님들 모두다 열심히 수련하셔서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이 공부를 하시는 모든 분들은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강하셔서 주변의 많은 분들께 이 공부를 권유하시어 대한민국 모든 분들이 이 익지공을 공부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2월 9일 송미영 올립니다. |
|
|
126 |
장공 소감문-류평열(2006.2.8)
|
| 장공소감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기공과의 인연은 2년전에 잠시 연이 되었다가
2005년 10월 말부터 확실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머리 두통이 생겨 이곳저곳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던 중에 우연히
같은 회사에 다니는 원종희씨의 소개로 인해
익지공을 소개받아 원장님께 3일정도
치료를 받고는 머리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05년 11월 1일부터
정식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에 대해 아무런 아는 것도 없이 1부공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기채집을 하는 기초를 배웠고
2부공을 하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로
병을 치료하는 법을 배웠고
3부공을 하며 한 차원 높은 기 채집을 배웠고
치료를 하면서 ‘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4부공을 하며 행동보다는 의념으로 기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공을 준비하면서 갈등도 많았었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시원함 반, 섭섭함 반..
장공을 잘 끝냈다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엔 의념이 무엇인지 기가 무엇인지 장시간 동안 앉아서 수련을 했습니다.
그런데 3일째쯤 되는 날에 흰 런닝이 누런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장님께 이유를 여쭈어 보니 제가 평소에
협심증으로 양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었는데, 지금 몸속에
쌓여 있던 양약이 배출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아주 짧게나마 영상을 본 적도 있었고
장공 수련후 느낀 것은 평소의 마음보다는 수련후에
말로는 표현하기 묘한 변화를 느낍니다.
3차 장공을 수련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꼭 한번 경험하라고
권하는 마음입니다.
2006.1
류 평 열 올림 |
|
|
125 |
3차장공을마치며~~~권영옥(2006.2.3)
|
| 1월7일부터 1월16일까지 장공을 한다는 말씀을듣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고 과연 장공은 어떤것인가를 가끔 생각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 무릎이 많이 아파 친구로 부터 중화양생익지공을 알게된게 지금은 너무나 고맙고 눈물이 날만큼 자랑스럽고 가슴이 찡한것을 느낀다.
또한 나의아들 정호가 장공까지 같이 하게 된것이 무엇보다도 중화양생익지공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싶다.
장공 날짜를 알고 정호에게 이야기를 했다
정호는 7일간 하는줄 알길래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않았다.
한다. 안한다. 여러날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느날 장공을 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1월7일이 되었다.
옷이랑 세면도구를 준비하여 차에 싣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벌써 많은 선배님께서 와계셧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님도 반가웠지만 나의도반 이상모씨는 더욱더 반가웠다. 이진선생님이 못오시나 걱정을 했는데 늦게 합류 하시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공이론 수업을 하고 암실수련에 들어갔다.
바쁘게 준비하고 들어와서 인지 수련중 잠이 자꾸만 오는데 감당이 되지 않아 1시간 수련하고 10분자고 그렇게 버텃는것 같다.
시간은 그래도 흘러간것 같다. 암실수련 하루가 지나가고 6층에 갔다.
장공 동기생들은 전부 피곤해서인지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아침밥 먹으러 가자고 웃으면서 5층으로가서 무극장을 했다
체조를 하고 한시간쉬고 암실 수련을 시작했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사탕을 하나 먹었다 이일로 원장님께 나중에 꾸중을 들었지만 좋은 경험을 했는것 같다.
아마 내년에 장공 할때는 절대 사탕을 먹지 않을 것이다.
사실난 장공 들어가기전에 사고를 많이 치고 들어 갔다.
형부치료 하다가 몸이 좋치 않앗고 동생잡에 가서도 몸이 좋지 않았다.
몸이 너무 아팠지만 원장님께서 원래아팟다고 생각하라고 해서난원래아프다고 머리로 가슴으로 입으로 수도없이 하고 다녔다.
얼른 장공을 해서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수련중 여상이 떴다.
형부가족중 막내를 빼고 중화양생익지공에 와야 너희 아들이 성공할것이다는 말을 남기고사라졌다.
그리고 오후에 수련중 나의등뼈를 비비고 빠져나가 버렸다. 등뻐가 제법 아프게 느껴졌다.
다음날 암실 수련중 7개월전에 죽은 규학이아빠친구가관세음보살님의 손을잡고 환하게 웃의면서 하늘로올라가는것이영상에 잡혔다.
나도 아는분 이었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적이없었다. 그분은 나와도 굉장히 오랜 친분이 있었는데 죽기전에 한번 보지도 못하고 그냥 갔다고 서운했는데 좋은 곳으로 가면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가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암실 수련은 계속 되었고 미정이가 너무아파하길래 엄마와 같이 치료를 해주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난 밤새 에너지를 모라 빼고 빼고 나의에너지가 모자라서 원장님 장공책을 가슴에 넣고 한시간 있었다 원장님장공책 에너지는 대단했다.
또 암실 수련은 계속되었고 이번에는 규학이아빠의 음기가 떠나는 것을 나의영상에 들어왔다. 아미타불부처님 애기동자등등. 파란옥색에 여러명이 가는것을 보았다. 이제 장공은 끝나고 마지막 밤을 수련장에서 자게되었따 김기사님이 자리를 정해 주었다. 전축앞에 원희씨와 나를 자게 자리를 잡아 주었다.
오랜만에 찜질방에서 자는것처럼잠을푹잔것같다.
이렇게 하여 제3기 장공반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지금에와서 생각을해보면 너무 많이 잔것 같다.
나자신에게도 미안 한것 같다. 그리고 늘 나를 치료해준 도반 이상모씨에게도 감사를드린다 아마내년에는 더잘할수있다고는 생각이든다 이렇게 무사히 마치게 도와준 중화생익지공 원장님이하 선배님 제3기 장공 동기생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정호에게도 정말 자랑스럽다고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
|
|
124 |
3차 장공수련 마치고...-무영자(2006.1.31)
|
| 제3차 장공 수련 마치고....
수련소감을 한분씩 발표하는데
박종한 도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는 원장님께 감사해가 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애서 참으려고 천정을 쳐다보았다.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무극장을 할 때 가슴이 답답했다는 종훈이 말의 여운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돌아 눈시울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이는 장공수련을 통하여 한없이 포장된 표층의식의 일부가 깨어져 심층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 익지공을 접한 것은 대도를 구하고저 기초를 닦기 위함 이였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껴 뜻한바 초석이 된다는 확신이 생겨
뜻있는 여러 스님 및 인연 있는 불자들과 더불어 다 같이 수련하기로
원을 세웠다.
인연 있는 분들께 권청하려면 우선 내가 먼저 알아야 권할 수 있을 것 같아 장공까지 하게 되었다.
우선 먼저 배우고 점차적으로 수련 할 것이라 생각이다.
38년의 승가생활 중에 수많은 시간을 앉아있어 근육이 굳은 감각을 느꼈다
습한 곳에서 오래토록 살아온 토굴생활을 통하여 얻은 병기가 돌출되기 시작했다. 발목이 넘넘 시려 방석을 덮고 또 덮곤 했다.
앉아 있으려니 다리가 아프고, 다리를 펴면 허리가 아파 다리도 펴지 못하고
수련시간엔 등을 바닥에 닿지 않기로 했으니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눕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다. 기다려지는 것은 원장님 발자국 소리뿐이다. 고통이 극에 달한 순간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드니 눈물이 나온다, 참으려고 애를 써 봐도 북 받혀 올라오는 서러운 울분을 어쩔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때 커텐이 졌혀지고 원장님의 목소리와 함께
심호흡 세 번을 했다.
다음시간, 미리 수건을 준비하고 앉았는데 눈물은 보이지도 않고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눈을 뜨나 감으나 보이는 것은 설경 속에 흐르는 맑디맑은 시냇물 그리고 고웁고, 예쁘게 핀 매화꽃들....... 대자연의 운치 등등의 망상만 지나 갈 뿐 끝내 울분을 폭발 시키지 못했다.
어린 시절,
살지 못할 것이라 밀쳐져,
버려진 자식이라
병마에 시달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 공포 등으로 생긴
박탈감, 의존감이 많은 나로서는
언잰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박탈감과 의존심 때문에 밖으로 향했던 마음을 거두고
나를 믿고 의지하며 살고 싶다.
비굴하게 살았구나,
많이 비참하다
의존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심각한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
표층의식을 깨고 심층의식의 세계를 두드려본다.
서글프고
원망스럽고
어머니가 있어도 엄마 찾아 길 떠난 어린 내 모습
엄마 찾아 헤맨 38년의 세월
무척이나 아팠다
그리고 또 아프다.
정말 외롭다.........
이젠 이 굴레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 같다.
장공수련을 통한 득과이다.
글을 올리는 지금 소리없이 울고 있다.
콧물과 눈물이 범벅되어 줄이고 싶다.
장공 수련을 같이한 선배님들 그리고 3기생 모두가 도반 이라기보다는
형제 같은 기분이고 느낌이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기를 나눈 우리는 형제다. 한량없는 세월 속에 맺어온 인연의 산실이라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모두가 내 몸 같아 마음과 마음이 전이된다.
전이되는 이 마음 더욱더 증대 되리라 믿는다. |
|